한국의 에너지 전환이 2025년 들어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정부가 발표한 제15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2038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30.6%로 확대하고 원자력 비중은 32.4%로 유지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는 2024년 기준 재생에너지 9.4%, 원자력 31.8%와 비교해 재생에너지 부문에서 급격한 성장을 의미한다. 특히 태양광 발전용량을 현재 25GW에서 2038년 108GW로 4배 이상 확대하고, 풍력은 2GW에서 36GW로 18배 증가시킨다는 계획이다.

이러한 정책 변화의 배경에는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달성 압박과 함께 에너지 안보 강화 필요성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2018년 대비 40% 감축하겠다고 국제사회에 약속했으며, 이 중 전력 부문의 감축 기여도가 44.4%에 달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24년 한국의 에너지 자립도는 20.9%로 OECD 평균 70.2%에 크게 못 미치는 상황에서, 재생에너지 확대는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도 필수적 과제로 인식되고 있다.
국내 재생에너지 시장의 성장세는 투자 규모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한국에너지공단 통계에 따르면 2024년 재생에너지 분야 투자액은 전년 대비 23% 증가한 18조 5천억 원을 기록했으며, 2025년에는 22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해상풍력 분야의 투자가 급증하고 있는데, 전남 신안 해상풍력 8.2GW 프로젝트를 비롯해 총 25개 해상풍력 단지 개발이 진행 중이며, 이들 프로젝트의 총 투자 규모는 85조 원에 달한다.
태양광 산업의 기술 혁신과 시장 확대
한국의 태양광 산업은 기술 혁신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한화솔루션(서울 본사)은 2024년 4분기 미국 조지아주 달튼 공장에서 연산 2.1GW 규모의 태양전지 생산을 시작했으며, 차세대 헤테로접합(HJT) 기술을 적용한 제품의 효율성이 24.1%에 달해 업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기존 PERC 기술 대비 2-3% 포인트 높은 수치로, 동일 면적에서 더 많은 전력 생산이 가능해 설치 비용 절감 효과를 가져온다.
국내 태양광 모듈 제조업계의 기술 경쟁력 향상은 수출 실적에서도 확인된다. 한국무역협회 데이터에 따르면 2024년 1-10월 태양전지 및 모듈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41% 증가한 34억 달러를 기록했다. 특히 북미 시장에서의 점유율이 크게 확대되었는데, 이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혜택과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 정책이 한국 기업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결과다. 한화솔루션의 경우 2024년 북미 매출이 전체 태양광 사업 매출의 67%를 차지하며, 2025년에는 7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태양광 발전사업 시장에서도 구조적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기존의 산지나 농지 중심의 육상 태양광에서 수상 태양광과 건물일체형 태양광(BIPV)으로 설치 트렌드가 변화하고 있다. 한국수자원공사는 2025년까지 전국 댐과 저수지에 총 2.1GW 규모의 수상 태양광을 설치할 계획이며, 이 중 1.2GW가 이미 완공되어 상업운전 중이다. 수상 태양광의 경우 육상 대비 5-10% 높은 발전효율을 보이며, 물의 증발을 억제해 수자원 보존 효과도 기대된다.
해상풍력의 부상과 산업 생태계 변화
해상풍력 분야는 한국 재생에너지 정책의 핵심 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전남 신안 해상풍력 프로젝트는 2030년까지 8.2GW 규모로 완공될 예정이며, 이는 원자력발전소 8기에 해당하는 용량이다. 이 프로젝트의 총 사업비는 48조 5천억 원으로, 완공 시 연간 24.3TWh의 전력을 생산해 약 800만 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규모다. 두산에너빌리티(창원 본사)는 이 프로젝트에 8MW급 해상풍력터빈 1,025기를 공급할 예정이며, 2024년 해상풍력 부문 매출이 전년 대비 89% 증가한 1조 2천억 원을 기록했다.
해상풍력 산업의 성장은 관련 부품 및 서비스 업체들에게도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울산 본사)은 해상풍력 설치선(WIV) 건조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 점유율 1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2024년 수주한 해상풍력 설치선 6척의 총 계약금액은 1조 8천억 원에 달한다. 특히 차세대 15MW급 터빈 설치가 가능한 대형 설치선의 경우 척당 3천억 원의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며, 2025년부터 본격적인 인도가 시작될 예정이다.
해상풍력 단지 개발 과정에서 지역 경제 활성화 효과도 주목받고 있다. 전남 신안군의 경우 해상풍력 프로젝트로 인해 2024년 지방세 수입이 전년 대비 156% 증가한 847억 원을 기록했으며, 직간접 일자리 창출 효과는 약 2만 3천 개로 추산된다. 또한 해상풍력 단지 주변 해역에서 어업활동이 제한되는 대신, 사업자들이 어업인들에게 지급하는 어업손실보상금이 연간 180억 원 규모에 달해 지역 어업인들의 소득 다변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해상풍력 개발 과정에서 환경 영향과 어업 갈등 등의 과제도 여전히 존재한다. 환경부의 해상풍력 환경영향평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조류 이동경로와 서식지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터빈 간 이격거리를 기존 800m에서 1,200m로 확대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일부 프로젝트의 발전용량이 당초 계획 대비 15-20% 감소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으며, 사업 경제성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에너지저장시스템(ESS) 시장의 급성장도 주목할 만한 변화다. 재생에너지 발전량 증가에 따른 전력망 안정성 확보 필요성이 커지면서, ESS 설치 용량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삼성SDI(수원 본사)는 2024년 ESS용 배터리 매출이 전년 대비 67% 증가한 4조 1천억 원을 기록했으며, 특히 대용량 계통연계형 ESS 프로젝트 수주가 크게 늘었다. 한국전력공사는 2025년까지 전국에 총 4.7GWh 규모의 계통연계형 ESS를 구축할 계획이며, 이 중 70%가 재생에너지 발전단지와 연계된 시설이다.
원자력 분야에서도 새로운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정부는 2024년 12월 ‘한국형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술개발 및 실증 로드맵’을 발표하며, 2030년대 초 상용화를 목표로 SMR 개발에 본격 착수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미국 뉴스케일파워와 협력해 77MW급 SMR 모듈 개발을 진행 중이며, 2028년까지 기술 실증을 완료할 계획이다. SMR의 경우 기존 대형 원전 대비 건설기간이 3-4년으로 단축되고 초기 투자비용도 30% 이상 절감할 수 있어, 중소규모 전력 수요나 산업단지 전용 전원으로서의 활용 가능성이 높다.
국내 에너지 기업들의 해외 진출도 가속화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서울 본사)은 2024년 미국 조지아주에 배터리 분리막 공장 증설을 완료해 연산 1억 3천만㎡ 규모의 생산능력을 확보했으며, 이는 전기차 130만대 분량에 해당한다. POSCO홀딩스(포항 본사) 역시 호주 필바라 지역의 리튬 광산 지분 15%를 39억 달러에 인수하며 배터리 원료 공급망 안정성을 강화했다. 이러한 해외 투자는 국내 배터리 및 재생에너지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전략적 포석으로 평가된다.
한국전력공사의 경우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전력망 투자를 대폭 늘리고 있다. 2025년 송배전 설비 투자 계획은 전년 대비 18% 증가한 7조 2천억 원으로, 이 중 스마트그리드 구축과 재생에너지 연계 송전선로 건설에 2조 8천억 원이 투입된다. 특히 제주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제3차 해저케이블 건설(200MW급)이 2025년 하반기 착공 예정이며, 이를 통해 제주 지역의 잉여 재생에너지를 본토로 송전할 수 있게 된다.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나타나는 도전과제들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재생에너지 발전량의 간헐성 문제로 인한 전력 수급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으며, 2024년 재생에너지 출력제한 시간이 전년 대비 34% 증가한 1,247시간을 기록했다. 이는 특정 시간대에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전력 수요를 초과할 때 발생하는 현상으로, 전력망 안정성 확보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다. 한국전력공사는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수요반응(DR)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있으며, 2025년 DR 계약용량을 4.2GW로 늘릴 계획이다.
전력 요금 체계의 개편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현재 한국의 전기요금은 OECD 평균의 67% 수준으로 상대적으로 저렴하지만,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전력망 투자 비용과 환경비용을 반영한 요금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25년 상반기 중 시간대별 차등요금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재생에너지 발전이 많은 낮 시간대의 전기요금을 낮추고 피크 시간대 요금을 높여 전력 수요를 평준화할 계획이다.
한국의 에너지 전환은 2025년을 기점으로 실질적 변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전체의 15%를 넘어서며 가시적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고, 관련 산업 생태계도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특히 해상풍력과 대용량 ESS 시장의 본격 개화는 국내 에너지 산업에 새로운 성장 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전력망 안정성 확보, 환경 영향 최소화, 경제성 확보 등의 과제 해결이 에너지 전환의 성공적 완수를 위한 핵심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정책과 민간 투자, 기술 혁신이 조화롭게 결합될 때 한국은 글로벌 에너지 전환 선도국가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