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 모듈 산업의 글로벌 패러다임 변화
2024년 글로벌 태양광 모듈 시장은 전례 없는 구조적 변화를 겪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 태양광 설치 용량은 346GW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전년 대비 29% 증가한 수치다. 하지만 이러한 성장세 이면에는 중국 제조업체들의 압도적 시장 지배력이 자리하고 있다. BloombergNEF 데이터에 의하면, 2024년 기준 중국 기업들이 전 세계 태양광 모듈 생산량의 85%를 차지하고 있으며, 상위 10개 제조업체 중 8개가 중국 기업이다.
이러한 시장 환경에서 한국의 HD현대에너지솔루션(울산 본사)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동사는 2023년 연결 기준 매출액 1조 2,847억원을 기록했지만, 영업이익률은 2.1%에 불과했다. 이는 중국 1위 모듈 제조업체인 LONGi Green Energy Technology(시안 본사)의 영업이익률 8.9%와 비교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러한 수익성 격차가 단순히 규모의 경제 차이를 넘어서, 태양광 모듈 산업의 구조적 특성에서 기인한다고 분석한다.
태양광 밸류체인은 크게 폴리실리콘 → 웨이퍼 → 셀 → 모듈 → 시스템 통합의 단계로 구성된다. 이 중 모듈 제조는 상대적으로 기술 진입장벽이 낮고 자동화가 용이한 영역으로, 대규모 투자를 통한 원가 절감이 경쟁력의 핵심 요소가 되었다.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산업 지원 정책과 저렴한 제조 비용을 바탕으로, 중국 업체들은 2020년부터 2024년까지 모듈 가격을 와트당 0.45달러에서 0.18달러로 60% 가량 낮췄다. 이러한 가격 하락은 재생에너지 보급 확산에는 긍정적이지만, 한국을 포함한 비중국 제조업체들에게는 생존의 위협이 되고 있다.
HD현대에너지솔루션의 2024년 3분기 실적을 보면 이러한 구조적 어려움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동사의 3분기 연결 매출액은 3,20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3% 감소했으며, 영업손실은 89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주력 사업인 태양광 모듈 부문의 출하량은 전년 동기 대비 18% 감소한 1.2GW를 기록했다. 이는 글로벌 태양광 시장이 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업체들이 가격 경쟁에서 밀려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중국 태양광 업체들의 압도적 경쟁력 분석
중국 태양광 모듈 업체들의 경쟁력은 단순한 저임금 노동력을 넘어서는 종합적 우위에서 나온다. 1위 업체인 LONGi는 2024년 기준 연간 생산 능력이 85GW에 달하며, 이는 HD현대에너지솔루션의 연간 생산 능력 5GW의 17배에 해당한다. 2위 업체인 Trina Solar(창저우 본사)는 75GW, 3위 JA Solar(베이징 본사)는 65GW의 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대규모 생산 능력은 원재료 구매에서의 협상력, 연구개발비 분산 효과, 그리고 제조 원가 절감으로 이어진다.
더욱 주목할 점은 중국 업체들의 수직 통합 전략이다. LONGi의 경우 폴리실리콘부터 모듈까지 전 공정을 내재화하여 공급망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있다. 반면 HD현대에너지솔루션은 주요 원재료인 태양광 셀의 상당 부분을 외부에서 조달하고 있어, 원가 경쟁력에서 구조적 불리함을 안고 있다. 업계 조사기관인 PV InfoLink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중국 내 통합 생산업체의 모듈 제조 원가는 와트당 0.12달러인 반면, 한국 업체들의 평균 제조 원가는 0.19달러로 58% 높은 수준이다.
중국 정부의 정책적 지원도 간과할 수 없는 요소다. 중국은 ’14차 5개년 계획’을 통해 2030년까지 태양광 발전 설비 용량을 1,200GW까지 확대하겠다고 발표했으며, 이를 위해 제조업체들에게 저금리 정책자금과 토지 사용료 감면 등의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Made in China 2025’ 전략의 일환으로 태양광 산업을 10대 핵심 산업 중 하나로 지정하여 집중 육성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적 뒷받침은 중국 업체들이 단기적 수익성보다는 시장 점유율 확대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기술 혁신 측면에서도 중국 업체들이 앞서가고 있다. LONGi는 2024년 상반기 페로브스카이트-실리콘 탠덤 셀에서 33.9%의 변환 효율을 달성하며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이는 기존 실리콘 셀의 이론적 한계인 29%를 뛰어넘는 수치로, 차세대 태양광 기술에서도 중국이 주도권을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HD현대에너지솔루션의 주력 제품인 단결정 실리콘 모듈의 변환 효율은 22.5% 수준으로, 기술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태양광 산업의 전략적 대응과 HD현대에너지솔루션의 위치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 태양광 업계는 차별화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HD현대에너지솔루션은 2024년 하반기부터 고효율 N-type 모듈 생산 라인을 본격 가동하기 시작했다. N-type 기술은 기존 P-type 대비 5-10% 높은 변환 효율과 더 나은 내구성을 제공하지만, 제조 원가가 15-20% 높다는 단점이 있다. 동사는 이러한 프리미엄 제품을 통해 가격 경쟁에서 벗어나 품질 경쟁으로 전환하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업계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태양광 시장 조사기관인 Solar Power Europe의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태양광 모듈 시장에서 프리미엄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15% 내외에 불과하며, 대부분의 구매자들은 여전히 가격을 최우선 고려사항으로 꼽고 있다. 특히 유틸리티 규모의 대형 태양광 발전소 프로젝트에서는 초기 투자비 절감이 핵심 요소로 작용하고 있어, 고효율 제품의 시장 확대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화솔루션(서울 본사) 역시 유사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동사는 2024년 3분기 기준 태양광 모듈 부문에서 영업손실 187억원을 기록했으며, 미국 조지아주 공장의 가동률을 30% 수준으로 낮춰 운영하고 있다. 한화솔루션은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현지 생산 기반을 구축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산 저가 제품의 간접 수입 증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는 단순히 생산 기지를 이전하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경쟁력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을 시사한다.
반면 일부 전문가들은 장기적 관점에서 한국 업체들의 기회를 찾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부터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CBAM)이 본격 시행되면서 중국산 태양광 모듈에 대한 탄소세가 부과될 예정이다. 또한 미국과 인도 등 주요 시장에서 중국 의존도를 줄이려는 ‘디리스킹’ 정책이 강화되고 있어, 한국 업체들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미국 에너지부는 2024년 말 발표한 ‘태양광 공급망 다변화 전략’에서 한국을 핵심 파트너 국가로 지정했다.
HD현대에너지솔루션은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추진하고 있다. 동사는 2024년 하반기부터 에너지저장시스템(ESS) 사업 확대에 본격 나섰으며, 태양광 발전소 개발 및 운영 사업에도 진출했다. ESS 시장은 2024년 기준 전 세계 시장 규모가 120억 달러로, 연평균 25% 성장이 예상되는 고성장 분야다. 하지만 이 시장에서도 중국 업체들인 CATL(닝더 본사)과 BYD(선전 본사)가 각각 34%와 18%의 시장 점유율로 1, 2위를 차지하고 있어, 또 다른 중국과의 경쟁이 예상된다.
HD현대그룹 차원에서는 에너지솔루션을 그룹의 전력 인프라 사업과 연계하려는 시너지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HD현대일렉트릭(창원 본사)이 보유한 변압기, 배전반 등 전력기기 사업과 HD현대에너지솔루션의 태양광 모듈을 결합한 통합 솔루션 제공이 그 핵심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이러한 시너지 효과는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으며,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우세한 상황이다. 실제로 HD현대에너지솔루션의 2024년 주가는 연초 대비 35% 하락하여, 같은 기간 HD현대일렉트릭이 28% 상승한 것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HD현대에너지솔루션의 현재 상황을 “좋은 회사이지만 나쁜 업종”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동사의 기술력과 품질 수준은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태양광 모듈 산업 자체가 중국의 압도적 우위로 인해 구조적으로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는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서 메모리 반도체는 한국이 강세를 보이지만, 파운드리는 대만의 TSMC가 독점하는 것과 유사한 구조적 특성으로 해석된다.
결국 HD현대에너지솔루션의 향후 전망은 태양광 모듈 사업에서의 탈피 속도와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 여부에 달려 있다. 동사가 추진 중인 ESS 사업과 발전소 개발 사업이 성공적으로 안착한다면 새로운 전환점을 맞을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다. 투자자 관점에서는 HD현대그룹 내에서도 상대적으로 투자 매력도가 낮은 종목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그룹 차원의 전략적 지원이 없다면 독자적인 성장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재생에너지 산업의 성장이 반드시 관련 기업들의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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