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부다비에서 열린 ADIPEC 2025에서 카타르 에너지부 장관 사드 빈 셰리다 알 카아비가 던진 폭탄 발언이 전 세계 에너지 업계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순배출 제로는 달성 가능하다고 믿지 않는다”는 그의 직설적인 발언은 단순한 개인 의견을 넘어, 산유국들이 공유하는 ‘에너지 현실주의’의 대표적 입장으로 해석되고 있죠. 특히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95%에 달하고 제조업 중심 경제구조를 가진 한국에게는 새로운 딜레마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을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간헐성 재생에너지만으로 대규모 전력망의 안정성을 확보하기가 정말 어려운 게 현실이거든요. 더욱이 탄소중립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비용이 결국 소비자 부담으로 전가되면서 에너지 빈곤층 확대와 산업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실제 데이터를 보면 이런 우려가 단순한 기우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유럽연합은 2024년 기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47%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10%보다 무려 4배 이상 높은 수준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유럽연합의 전기요금은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는 게 문제죠. 스태티스타 자료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가정용 전기요금이 kWh당 아일랜드 0.45달러, 이탈리아 0.43달러, 독일·벨기에·영국 0.4달러로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의 전기요금은 kWh당 0.081달러로 미국(0.18달러), 일본(0.23달러)보다도 현저히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한국보다 더 낮은 곳은 중국(0.08달러), UAE(0.08달러), 터키(0.07달러), 러시아(0.06달러) 정도밖에 없을 정도죠. 이런 전기요금 격차는 단순히 정책적 차이를 넘어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트럼프와 산유국의 공통분모, ‘에너지 현실주의’ 확산
흥미롭게도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기후위기 과학 자체를 부정하는 ‘기후위기 사기론’을 펼치면서 파리협정 등 기후 규제가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일자리를 감소시킨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과학적 기반은 다르지만, 기후 규제를 성장 저해 요인으로 본다는 점에서 산유국과 목적을 공유하고 있는 셈이죠.
이런 흐름은 단순히 화석연료 생산국들의 기득권 보호 차원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실제로 기후정책을 적극적으로 주도해온 주요국들조차 석탄발전을 완전히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거든요. 탈석탄을 선언했던 독일마저 올해 총선에서 집권한 기독민주당(CDU)이 가스, 석탄 등 화력발전 50기를 짓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을 정도입니다.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현실을 보면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에는 사상 처음으로 전 세계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석탄 발전량을 추월했다는 긍정적인 소식이 있었지만, 지난해 기준 글로벌 석탄 사용량은 오히려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석탄 사용량이 감소한 것이 아니라 증가 속도가 둔화됐을 뿐 여전히 쓰임이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죠.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전 세계 에너지 소비 중 무탄소 발전원의 비중은 41%로 석탄 발전보다 7%포인트 앞섰습니다. 하지만 태양광·풍력 등 순수 재생에너지 비중만 따져보면 여전히 15%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게 현실입니다. 중국·미국·독일 등 주요국도 전력망 안정성 확보를 위해 석탄발전을 전략적 백업 전원으로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죠.
한국의 상황은 더욱 복잡합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최근 브라질에서 열린 COP30에서 탈석탄동맹에 가입했지만, 국내 에너지 업계에서는 여전히 전력수급 안정을 위해서는 필요하다는 반발이 제기되고 있거든요. 한국만 지나치게 일방적인 탈석탄을 선언할 경우 산업·전력 안정성 측면에서 국제 흐름과 괴리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형 에너지 전략, 현실과 이상 사이의 균형점
한국의 에너지 정책이 직면한 딜레마는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우선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보면, 한국은 원유 수입량 기준 세계 5위, 천연가스 수입량 기준 세계 3위의 에너지 수입 대국입니다. 2024년 기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95%에 달하는 상황에서 급진적인 에너지 전환은 공급 안정성에 치명적인 위험을 초래할 수 있죠.
특히 제조업이 GDP의 28%를 차지하는 한국 경제구조를 고려하면 에너지 비용 상승은 곧바로 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집니다. 이미 한국의 주력 기업들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포스코 등은 글로벌 경쟁에서 원가 경쟁력이 핵심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상황이거든요. 전기요금이 4-5배 오르면 이들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에 치명타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탄소중립을 완전히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EU의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CBAM)이 본격 시행되면서 탄소 집약적 제품에 대한 무역 장벽이 높아지고 있고, ESG 경영이 기업 생존의 필수 요소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죠. 실제로 한국의 주요 수출 품목인 철강, 시멘트, 화학제품 등이 CBAM 적용 대상에 포함되어 있어 대응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택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은 ‘한국형 에너지 실용주의’입니다. 이는 탄소중립이라는 장기 목표를 유지하되, 에너지 안보와 산업 경쟁력을 동시에 고려한 단계적 전환 전략을 의미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원자력 발전 비중 확대, LNG 등 상대적으로 청정한 화석연료로의 전환, 재생에너지 기술 개발 및 보급 확대를 병행하는 방식이죠.
원자력의 경우 한국은 세계 6위의 원전 보유국으로 기술력도 상당한 수준입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운영하는 25기의 원전이 전체 발전량의 약 30%를 담당하고 있고, 두산에너빌리티 같은 기업들이 원전 핵심 부품 제조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거든요. 원전은 탄소 배출이 거의 없으면서도 안정적인 기저 전력을 공급할 수 있어 한국 상황에 적합한 대안으로 평가됩니다.
재생에너지 분야에서도 한국 기업들의 기술력이 상당히 발전했습니다. 한화솔루션은 글로벌 태양광 모듈 생산량 기준 세계 7위 수준이고, 삼성SDI와 LG에너지솔루션은 ESS(에너지저장시스템)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술력을 바탕으로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문제를 해결하면서 점진적으로 비중을 늘려나가는 전략이 현실적이죠.
개인적으로는 한국이 성급한 탈석탄보다는 현실적인 에너지 믹스 최적화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30%로 늘리겠다는 목표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전력 공급 안정성과 산업 경쟁력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 더욱 중요하거든요. 독일이나 영국처럼 에너지 요금 급등으로 제조업이 타격을 받는 상황은 피해야 합니다.
결국 한국은 기후 대응과 산업 경쟁력, 전력망 안정성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시점에 와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현실주의’가 확산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한국만의 실용적인 에너지 전환 로드맵을 확정할 적기인 것 같습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한국이 어떤 선택을 할지, 그리고 그 선택이 향후 한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 글은 [에너지 인사이트] ‘에너지 현실주의’ 급부상…한국의 딜레마 기사를 읽고, 개인적인 의견과 분석을 더해 작성했습니다.
면책 조항: 이 블로그는 뉴스 매체가 아니며, 작성된 내용은 저자의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투자 결정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으며, 이 글의 내용을 근거로 한 투자 손실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