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newable Energy

한국의 차세대 원자력 기술이 글로벌 청정 에너지 경쟁에서 승부수를 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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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말 현재, 전 세계 에너지 산업은 탄소 중립 목표와 에너지 안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하는 전례 없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원자력 에너지가 재평가받고 있으며, 특히 차세대 원자력 기술인 소형모듈원자로(SMR)와 4세대 원자력 기술이 게임 체인저로 부상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글로벌 SMR 시장 규모는 2024년 약 70억 달러에서 2030년 300억 달러로 연평균 35%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거대한 시장 변화의 중심에서 한국의 원자력 기업들이 독특한 기술력과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국의 차세대 원자력 기술이 글로벌 청정 에너지 경쟁에서 승부수를 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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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원자력 산업 생태계는 지난 50년간 축적된 기술력과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현재 한국은 전력 생산의 약 30%를 원자력에 의존하고 있으며, 25기의 원자력 발전소를 운영 중이다. 특히 한국의 원전 이용률은 세계 최고 수준인 93.4%를 기록하고 있어, 기술적 신뢰성과 운영 효율성에서 글로벌 리더십을 입증하고 있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한국전력공사(본사: 서울)와 두산에너빌리티(본사: 창원), 한전기술(본사: 경주) 등 주요 기업들이 차세대 원자력 기술 개발과 해외 진출에 본격적인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소형모듈원자로(SMR) 분야에서 한국의 접근 방식은 기존의 대형 원자로 기술을 소형화하면서도 안전성과 경제성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개발 중인 스마트(SMART) 원자로는 전기출력 100MW급으로, 기존 대형 원자로 대비 건설 기간을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할 수 있다. 이는 미국의 뉴스케일 파워(본사: 오리건주)가 개발 중인 77MW급 SMR이나 러시아 로사톰(본사: 모스크바)의 35MW급 아카데미크 로모노소프와 비교해 중간 규모의 전력 수요에 최적화된 솔루션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스마트 원자로는 피동안전계통을 적용해 전력 공급 중단 상황에서도 냉각수 순환이 자동으로 유지되는 혁신적인 안전 설계를 구현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SMR 시장에서 독특한 포지셔닝을 취하고 있다. 동사는 기존 대형 원자로용 증기발생기와 원자로용기 제조 기술을 바탕으로 SMR용 핵심 기자재 개발에 집중하고 있으며, 2024년 3분기 기준 원자력 부문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42% 증가한 1조 2,300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체코 두코바니 원전 프로젝트 수주와 더불어 SMR 관련 연구개발 투자 확대의 결과로 분석된다. 두산에너빌리티는 2025년부터 연간 R&D 투자를 기존 대비 60% 늘린 2,400억 원으로 확대하기로 결정했으며, 이 중 40%를 차세대 원자력 기술에 집중 투자할 계획이다.

글로벌 SMR 시장의 경쟁 구도와 한국의 차별화 전략

현재 글로벌 SMR 시장은 미국, 러시아, 중국, 한국이 주도하는 4강 구도로 형성되어 있다. 미국의 뉴스케일 파워는 2029년 상용 운전을 목표로 하는 첫 번째 SMR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미국 에너지부로부터 총 13억 달러의 지원을 받고 있다. 러시아는 이미 부유식 원자력 발전소 아카데미크 로모노소프를 상용화했으며, 2025년 말까지 4기의 추가 부유식 SMR을 건설할 예정이다. 중국은 하이난성에 125MW급 링롱 원(ACP100) 건설을 진행하고 있으며, 2026년 상용 운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치열한 경쟁 상황에서 한국의 차별화 전략은 안전성과 경제성의 균형에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스마트 원자로의 건설 단가는 MW당 약 650만 달러로, 뉴스케일의 890만 달러, 중국 링롱원의 720만 달러보다 경쟁력이 높다. 또한 스마트 원자로는 60년간의 설계 수명을 갖고 있어, 일반적인 SMR의 40-50년 대비 장기적 경제성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한전기술은 이러한 기술적 우위를 바탕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요단에서 스마트 원자로 도입을 위한 기술 협력 협정을 체결했으며, 2025년 상반기 중 구체적인 건설 계약 체결을 목표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한국이 SMR과 재생에너지의 하이브리드 시스템 개발에 선도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전력은 2024년 11월 제주도에서 스마트 원자로와 해상풍력을 연계한 파일럿 프로젝트 계획을 발표했다. 이 시스템은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SMR의 안정적인 기저 전력으로 보완하는 개념으로, 전력 공급의 신뢰성을 95% 이상 보장할 수 있다고 분석된다. 이는 덴마크의 오스테드(본사: 프레데리시아)나 영국의 EDF(본사: 런던) 등 재생에너지 선도 기업들과도 차별화되는 독창적인 접근법이다.

4세대 원자력 기술 개발에서도 한국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소듐냉각고속로(SFR) 기술 개발을 통해 사용후핵연료를 재활용할 수 있는 원자력 시스템 구축에 나서고 있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현재 원자력 발전의 가장 큰 과제 중 하나인 핵폐기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SFR 기술은 우라늄 자원의 활용 효율을 기존 대비 100배 이상 향상시킬 수 있으며, 고준위 폐기물의 독성 기간을 10만 년에서 300년으로 대폭 단축할 수 있다.

시장 기회와 투자 전망, 그리고 도전 과제

글로벌 원자력 시장의 부활은 여러 거시경제적 요인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2050년까지 전 세계 원자력 발전 용량이 현재의 370GW에서 890GW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약 5,200억 달러 규모의 신규 투자 기회를 의미한다. 특히 SMR 시장은 이 중 약 1,200억 달러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며,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전체 SMR 시장의 45%를 점유할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 기업들에게는 국내 기술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 진출을 가속화할 절호의 기회가 열리고 있다.

투자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의 원자력 관련 기업들은 상당한 성장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의 경우, 체코 원전 수주를 통해 향후 15년간 약 24조 원의 매출 파이프라인을 확보했으며, 이는 현재 연매출의 약 8배에 해당하는 규모다. 한국전력 역시 해외 원전 사업 확대를 통해 2030년까지 해외 매출 비중을 현재의 15%에서 35%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특히 중동과 동남아시아 지역에서의 SMR 수요 증가가 한국 기업들의 성장을 견인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러한 기회와 함께 상당한 도전 과제들도 존재한다. 가장 큰 과제는 인허가와 규제 승인 과정의 복잡성이다. SMR 기술은 기존 원자력 규제 체계와 다른 새로운 안전 기준과 승인 절차를 필요로 한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뉴스케일의 SMR 설계 승인에만 6년이 소요되었으며, 각국의 규제 기관들이 서로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어 글로벌 표준화가 시급한 상황이다. 한국 역시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스마트 원자로의 표준설계승인을 위한 새로운 규제 체계 구축을 진행하고 있지만, 완료까지는 2-3년이 더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공급망 관리와 핵심 소재 확보도 중요한 이슈다. SMR 제조에 필요한 고순도 농축우라늄의 경우, 현재 러시아가 전 세계 공급량의 44%를 담당하고 있어 지정학적 리스크가 존재한다. 한국은 이를 대비해 카자흐스탄의 카자톰프롬(본사: 누르술탄), 캐나다의 카메코(본사: 서스커툰) 등과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있지만, 가격 변동성과 공급 안정성 확보가 지속적인 과제로 남아 있다. 특히 2024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농축우라늄 가격이 파운드당 60달러에서 106달러로 76% 상승하면서, SMR 프로젝트의 경제성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력 양성과 기술 이전도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국제원자력기구는 203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약 15만 명의 원자력 전문 인력이 추가로 필요할 것으로 추산한다고 발표했다. 한국은 현재 연간 약 800명의 원자력 공학 전공자를 배출하고 있지만, SMR과 4세대 원자로 기술에 특화된 전문 인력은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이에 대응해 한국원자력연구원은 2025년부터 SMR 전문 교육 과정을 신설하고, 해외 기술자 교육 프로그램도 확대할 계획이다.

금융 측면에서는 프로젝트 파이낸싱의 복잡성이 또 다른 도전이다. SMR 프로젝트는 초기 투자 규모가 10억-30억 달러에 이르며, 투자 회수 기간이 15-20년으로 길어 금융기관들의 참여가 제한적이다. 또한 원자력 발전에 대한 ESG 투자 기준의 엄격함으로 인해 일부 기관투자자들의 투자 기피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수출입은행을 통한 원자력 수출 금융 지원을 연간 50억 달러로 확대하고, 민간 금융기관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정책적 인센티브도 강화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차세대 원자력 기술은 글로벌 청정 에너지 전환의 핵심 동력으로 자리잡을 잠재력이 충분하다. 특히 SMR 기술의 안전성과 경제성, 그리고 50년간 축적된 원자력 운영 경험은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 있는 차별화 요소다. 두산에너빌리티, 한국전력, 한전기술 등 주요 기업들의 해외 진출 성과와 기술 혁신 노력이 결실을 맺는다면, 한국은 원자력 기술 수출국으로서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규제 승인 지연, 공급망 리스크, 인력 부족 등의 과제들을 체계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것이 성공의 열쇠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향후 5년은 한국의 원자력 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 선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결정적인 시기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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