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현재, 양자컴퓨팅 산업이 실험실 단계를 벗어나 본격적인 상용화 궤도에 진입하면서 글로벌 기술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시작되고 있다. 뉴욕 본사의 IBM이 지난 10월 1000큐빗 규모의 양자컴퓨터 ‘콘도르(Condor)’를 클라우드 서비스로 출시한 데 이어, 캘리포니아의 구글(Alphabet)이 12월 초 차세대 양자 프로세서 ‘윌로우(Willow)’를 통해 양자 오류 수정의 획기적인 돌파구를 제시했다. 이러한 기술적 진보는 단순한 연구 성과를 넘어 산업 전반의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는 촉매제로 작용하고 있으며, 특히 금융, 제약, 물류, 사이버보안 분야에서 실질적인 비즈니스 모델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글로벌 양자컴퓨팅 시장은 2024년 19억 달러에서 2030년 650억 달러로 연평균 88.2%의 폭발적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맥킨지가 전망했다. 이는 인공지능 반도체 시장의 성장률(연평균 35%)을 크게 상회하는 수치로, 양자컴퓨팅이 차세대 컴퓨팅의 핵심 동력으로 자리잡고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북미 지역이 전체 시장의 42%를 점유하며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아시아태평양 지역도 중국과 한국의 적극적인 투자에 힘입어 35%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빠르게 추격하고 있는 상황이다.
양자컴퓨팅 기술의 핵심은 기존 이진법 비트와 달리 0과 1의 상태를 동시에 가질 수 있는 큐빗(qubit)을 활용해 병렬 연산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300큐빗 양자컴퓨터는 우주의 원자 수보다 많은 2^300가지 상태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어, 기존 슈퍼컴퓨터로는 수백만 년이 걸릴 복잡한 계산을 몇 분 내에 완료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상용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양자 상태의 불안정성과 오류율이었는데, 구글의 윌로우 칩이 이 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구글의 윌로우 칩은 105개의 큐빗을 탑재하면서도 양자 오류율을 기존 대비 절반 이하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큐빗 수가 증가할수록 오류율이 감소하는 ‘아래 임계값(below threshold)’ 현상을 실증했다는 점이다. 이는 양자컴퓨팅의 실용성을 크게 높이는 기술적 혁신으로, 기존에는 큐빗 수 증가와 함께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던 오류율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구글은 이 기술을 바탕으로 2030년까지 100만 큐빗 규모의 논리적 큐빗을 구현하겠다는 로드맵을 발표했으며, 이는 현재 물리적 큐빗 기준 10억 개에 해당하는 규모다.
글로벌 기업들의 양자컴퓨팅 생태계 구축 경쟁
IBM은 양자컴퓨팅 상용화에서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23년 1121큐빗의 ‘콘도르’ 프로세서를 발표한 데 이어, 2024년에는 양자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양자 네트워크 이니셔티브’를 출범시켰다. 현재 전 세계 200여 개 기업과 연구기관이 IBM의 양자 클라우드 서비스를 활용하고 있으며, 특히 JP모건체이스는 포트폴리오 최적화와 리스크 관리에 양자 알고리즘을 적용해 기존 대비 30% 향상된 수익률을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IBM의 양자 컴퓨팅 부문 매출은 2024년 8억 달러를 기록했으며, 2025년에는 15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토폴로지컬 큐빗(topological qubit) 기술에 집중하며 차별화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이 기술은 물리적으로 더 안정적인 큐빗을 구현할 수 있어 오류율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아직 실용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대신 마이크로소프트는 Azure 클라우드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양자컴퓨팅 하드웨어에 접근할 수 있는 통합 환경을 제공하며, 소프트웨어 생태계 구축에 주력하고 있다. 2024년 기준 Azure Quantum 서비스 이용자는 전년 대비 340% 증가한 5만 명을 넘어섰다.
아마존은 AWS를 통해 ‘브라켓(Braket)’ 양자컴퓨팅 서비스를 제공하며, 다양한 양자 하드웨어 제조업체들과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플랫폼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아마존은 자체 양자컴퓨터 개발보다는 양자 소프트웨어와 알고리즘 개발에 집중하며, 2024년 10월에는 양자 기계학습 라이브러리 ‘펜니레인(PennyLane)’을 브라켓에 통합해 개발자들의 접근성을 크게 향상시켰다. 아마존의 양자컴퓨팅 관련 매출은 2024년 3억 달러를 기록했으며, 주로 클라우드 서비스와 컨설팅 부문에서 발생했다.
중국의 양자컴퓨팅 투자 규모도 주목할 만하다. 중국 정부는 2021년부터 2030년까지 양자 기술 분야에 15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으며, 특히 베이징의 칭화대학교와 상하이의 중국과학기술대학이 주도하는 연구개발이 활발하다. 중국과학원은 2024년 11월 113개 광자를 이용한 양자컴퓨터 ‘지우장(Jiuzhang) 3.0’을 개발해 특정 계산에서 구글의 시카모어보다 10^24배 빠른 성능을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는 특수한 샘플링 문제에 한정된 결과로, 범용 양자컴퓨팅에서는 여전히 미국 기업들이 기술적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의 양자컴퓨팅 진출 전략과 시장 기회
한국 정부는 2024년 8월 ‘양자 기술 혁신 전략’을 발표하며 2030년까지 1조 원을 투자해 양자컴퓨팅, 양자통신, 양자센서 분야의 기술 자립을 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GDP 대비 양자 기술 투자 비중에서 미국(0.12%)과 중국(0.15%)을 넘어서는 0.18% 수준으로, 한국이 양자 기술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한국의 강점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기술을 양자 하드웨어 개발에 활용하는 전략이 주목받고 있다.
수원에 본사를 둔 삼성전자는 2024년 3월 삼성종합기술원 내에 ‘양자컴퓨팅 연구센터’를 신설하고 100명 규모의 전담 연구진을 구성했다. 삼성의 접근법은 기존 반도체 제조 기술을 활용해 실리콘 기반 큐빗을 개발하는 것으로, 이는 현재 주류인 초전도 큐빗보다 소형화와 대량생산에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삼성은 2025년 상반기 중 10큐빗 규모의 시제품을 완성하고, 2027년까지 100큐빗급 양자 프로세서를 양산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또한 삼성은 양자컴퓨터의 냉각 시스템과 제어 전자장치 분야에서도 기술 개발을 진행 중이며, 이 분야의 글로벌 시장 규모는 2030년 12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천에 본사를 둔 SK하이닉스는 양자 메모리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양자컴퓨터는 연산 과정에서 양자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특수한 메모리가 필요한데, 이는 기존 DRAM이나 NAND 플래시와는 완전히 다른 구조를 가져야 한다. SK하이닉스는 2024년 7월 미국 MIT와 공동으로 양자 메모리 소자 개발에 착수했으며, 초기 목표는 1마이크로초 이상의 코히어런스 타임(coherence time)을 달성하는 것이다. 현재 상용 양자 메모리의 코히어런스 타임은 100나노초 수준으로, 이를 10배 이상 향상시키면 양자컴퓨터의 실용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이 프로젝트에 2027년까지 5000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며, 성공할 경우 글로벌 양자 메모리 시장의 30% 점유율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서울에 본사를 둔 LG전자는 양자컴퓨팅의 응용 분야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LG전자는 양자 알고리즘을 활용한 배터리 소재 최적화와 가전제품의 에너지 효율성 향상에 집중하고 있다. 2024년 9월 LG전자는 캐나다의 양자컴퓨팅 스타트업 D-Wave와 파트너십을 체결해 냉장고와 에어컨의 최적 운전 알고리즘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초기 테스트 결과, 양자 어닐링(quantum annealing) 기법을 적용한 스마트 에어컨은 기존 대비 15%의 전력 절약 효과를 보였으며, 이는 연간 가구당 10만 원의 전기료 절약으로 이어질 수 있다. LG전자는 2026년부터 양자 최적화 기능을 탑재한 프리미엄 가전제품 라인을 출시할 예정이며, 이를 통해 연간 3000억 원의 추가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한국의 양자컴퓨팅 생태계에서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움직임은 스타트업들의 활발한 진출이다. 서울대학교 스핀오프인 ‘큐브릿’은 2024년 시리즈 A 라운드에서 200억 원을 유치하며 양자 소프트웨어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큐브릿이 개발한 양자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QSimulator’는 현재 국내 20여 개 연구기관에서 활용되고 있으며, 특히 신약 개발 분야에서 분자 구조 시뮬레이션의 정확도를 30% 향상시키는 성과를 보였다. 또한 KAIST 출신 연구진이 설립한 ‘큐리어스’는 양자 암호화 통신 장비를 개발해 2024년 기준 국내 금융기관 5곳에 납품하며 매출 150억 원을 달성했다.
양자컴퓨팅의 실제 비즈니스 적용 사례들도 구체적인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국내 증권사인 미래에셋증권은 2024년 10월부터 포트폴리오 최적화에 양자 알고리즘을 시범 적용하고 있으며, 초기 6개월간의 테스트에서 기존 대비 12%의 수익률 개선 효과를 확인했다. 특히 복잡한 파생상품의 가격 계산과 리스크 분석에서 양자컴퓨팅의 장점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한국의 대형 물류기업인 CJ대한통운도 2024년 하반기부터 배송 경로 최적화에 양자 알고리즘을 활용하기 시작했으며, 이를 통해 배송 시간을 평균 8% 단축하고 연료비를 15% 절약하는 성과를 달성했다.
하지만 한국의 양자컴퓨팅 산업이 직면한 과제들도 적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전문 인력 부족으로, 현재 국내 양자 기술 전문가는 500명 수준에 불과해 미국(8000명)과 중국(5000명)에 크게 뒤처져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25년부터 서울대, KAIST, 포스텍에 양자 기술 특성화 대학원을 설립하고 매년 200명의 석박사급 인력을 양성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기초 연구 인프라의 부족도 한계로 지적된다. 양자컴퓨터 운영에 필수적인 극저온 냉각 시설과 전자기 차폐 설비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연구개발 비용이 해외 대비 30% 이상 높은 상황이다.
2025년 말 현재 글로벌 양자컴퓨팅 시장에서 한국의 위치는 기술력 측면에서는 중위권이지만, 응용 분야에서는 독특한 강점을 보이고 있다. 특히 제조업과 물류 최적화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이 개발한 양자 알고리즘들이 실용적인 성과를 내고 있어, 향후 이 분야에서의 경쟁력 확보가 기대된다. 또한 한국의 우수한 반도체 제조 기술을 바탕으로 한 양자 하드웨어 개발도 중장기적으로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기술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속적인 투자와 함께 기업들의 과감한 연구개발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다. 양자컴퓨팅이 차세대 컴퓨팅의 핵심으로 자리잡아가는 현재, 한국이 이 분야에서 어떤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2026년이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